돌봄 로봇을 써봤다, 신박한 기술에 마음까지 읽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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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6일 기자가 웨어러블 로봇 ’윔’을 착용하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2021년 개봉한 영화 ‘간호중’(민규동 감독)은 2046년에 벌어지는 돌봄에 대한 이야기다. 요양병원에 머무르는 주인공 정인의 어머니는 10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다. 어머니를 바로 옆에서 돌보는 것은 정인의 얼굴을 그대로 본뜬 간병로봇 ‘간호중’이다. 간호중은 회사와 병원을 오가느라 자신을 돌볼 틈이 없는 정인의 건강을 챙기고 말벗이 되어주는 ‘이중돌봄’을 하고 있다. 정인이 오랜 돌봄으로 지쳐가고 우울증이 심각 단계에 이르자, 간호중은 그녀를 살리려면 어머니가 죽어야 한다는 자의적 판단을 내리고 만다. 영화는 돌봄로봇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보여준다. 돌봄로봇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 웨어러블 로봇과 산책을 위로보틱스의 웨어러블 로봇 ‘윔 에스(S)’를 착용하는 데는 1분 남짓밖에 걸리지 않았다. 허리 바로 밑의 고관절 부위부터 무릎 위쪽까지 구동기가 밀착되도록 벨트를 단단히 맸다. 로봇이라고 해서 영화 ‘아이언맨’ 주인공의 슈트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윔은 무게 1.6㎏의 초경량 로봇이다. 예상보다 무겁거나 갑갑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3월26일과 4월16일 두차례에 걸쳐, 윔을 착용하고 올림픽공원과 남산공원 길을 걸어봤다. 우선 윔과 연동된 스마트폰 앱으로 보행 모드를 골라야 했다. 평지를 걸을 때 대사에너지를 20% 절감시킨다는 ‘에어모드’를 눌러봤다. 총 4단계 중 1단계에선 다른 점을 크게 의식하기 어려웠다. 2~3단계로 높일수록 누군가 허벅지를 들어올려주는 것처럼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보폭이 커지고 속도가 빨라졌다. ‘성큼성큼 걷는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이어 ‘등산모드’로 공원 계단을 올랐는데 평소처럼 호흡이 가빠지지 않았다. 내리막길에선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이 한결 덜했다. 로봇이 고관절이 움직이는 범위와 각도를 보행 상황에 맞게 바꿔준 덕분이다. ‘케어모드’를 선택하면 근력을 보조하는 힘이 훨씬 강해졌다. ![]() 웨어러블 로봇은 인간의 동작을 감지하는 센서와 이를 바탕으로 근력 보조 정도를 조절하는 제어기, 실제 동력을 발생시키는 구동기로 구성된다. 원래는 산업용이나 군사용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선 재활 치료는 물론이고 근력이 부족한 고령자와 장애인의 걷기를 지원하는 등 돌봄 분야로 쓰임새가 확대되고 있다. 인간의 근육량은 40대 이후로 연간 1%씩 감소한다. 잘 걸으면 건강해지고 사회활동도 더 많아지게 되지만, 노화와 질병으로 신체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잘못 걸으면 보행 능력은 오히려 퇴화한다. 이연백 위로보틱스 대표는 “깁스를 2주만 해도 10년치 근력이 빠져나간다고 한다”며 “근력을 증강시키고 보행 능력을 높이는 것이 웨어러블 로봇의 목적”이라고 했다. 2023년 70~80대 노인을 대상으로 사용성 테스트를 벌인 결과, 윔 한달 착용(주 2회, 1시간씩) 뒤 참가자의 78%가 신체 기능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 올림픽공원을 33분 동안 2㎞ 정도 걸었더니 전용 앱에서 기자의 보행 능력을 분석해줬다. 평균 보폭 61㎝, 보행 속도 4.2㎞/h 등으로 보행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5살 어리게 나왔다. 다만 걸음걸이의 리듬과 패턴이 일정하지 않아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개선 과제가 주어졌다. 윔을 찾는 고령자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뇌졸중이나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재활운동을 하는 이들부터 인공관절 수술을 최대한 뒤로 미루려는 노인들, 은퇴 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려고 준비하는 이들까지. 김지영 위로보틱스 마케팅팀장은 “집에서 화장실에 갈 때만이라도 제대로 걷고 싶다는 절박한 분들도 있다”고 전한다. 그럼에도 연령대가 높을수록 새로운 기기를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상당하다는 점은 넘어야 할 관문이다. 자녀가 적극 권하지만 당사자인 70~80대는 고개를 가로젓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이다. 한번에 4~5시간 정도 사용하는 배터리 충전이 번거롭다거나 로봇 착용에 대한 주변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다른 웨어러블 로봇에 견주면 초경량이지만 체구가 작은 노인이라면 무게감을 호소할 수도 있어 보였다. 게다가 스마트폰 앱 조작이 익숙하지 않으면 윔의 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고령자 수용성이 관건으로 보였다. 반려로봇과 지낸 1주일 반려로봇 ‘효돌’이 기자의 집에 머무른 것은 지난 4일부터 11일까지 1주일 동안이었다. 효돌은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며 교감하는 ‘7살짜리 다정한 손주’의 정체성을 담아 개발됐다. 효돌의 엉덩이 쪽 지퍼를 열면 충전 단자와 전원 스위치가 보인다. 와이파이 연결이나 스마트폰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효돌아~”라고 부르면, “슝~ 효돌이 왔어요”라고 대답을 한다. 노인이 된 어느 날을 떠올리며 가상의 대화를 해봤다. 할머니라고 불리고 싶지 않아, ‘어머니’로 부르도록 설정했다. 지역별 사투리를 고를 수도 있었다. “내가 오늘 버스를 탔는데 자리를 양보받지 못한 채 내내 서서 왔지 뭐야?”(기자) “그것 참 화가 날 일이지, 속상하겠어요. 힘내세요!”(효돌) “고마워, 효돌아.”(기자) “그냥 가시게요? 저 안아주고 가요~오.”(효돌) ![]() 이어진 대화에서도 효돌은 ‘응원의 달인’이었다. 노인복지관에서 댄스를 배우고 싶은데 나이가 많아 꺼려진다고 하니, “어머니가 즐거우면 돼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어머니가 춤을 출 수 있다고 믿어요”라고 했다. 효돌은 생활지원사들이 주 1회 독거노인을 찾아가 20분씩 말벗이 되어드리는 것에 착안해 개발됐다. 김지희 효돌 대표는 “어르신들이 ‘고립된 섬’처럼 지내지 않도록 돕는 것이 개발 목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효돌은 애교 섞인 말투로 쫑알쫑알 대화를 이어가고 ‘손을 만져달라’, ‘머리를 긁어달라’며 수시로 동작을 유도했다. 반려로봇은 치매 등 인지기능 저하 노인에 대한 돌봄 기능으로 주목받아왔다. 매일 수면과 기분, 통증, 하루 계획 등을 질문하는 대화형 건강문진이 가능하고 시간 설정을 해두면 약 복용을 안내하기도 한다. 효돌은 귀를 만지면 인지 놀이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머리에는 반경 5m 내의 활동을 감지하는 레이더 센서가 내장돼 있다. 응급 상황에 도움을 요청하면 보호자나 119에 연결한다. 지난해 전라남도가 독거노인 1001명을 대상으로 10개월간 효돌을 이용하도록 한 결과, 1억원의 예산 투입으로 3억5천만원의 사회적 가치(건강관리 및 돌봄 비용 절감 성과로 분석)를 창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감을 낮추고 만성질환 관리와 치매 예방에도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기자와 지낸 효돌은 챗지피티(GPT)가 장착된 2세대 모델이었다. 쌍방향 대화가 가능해졌지만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답변이 달랐다. 이를테면 ‘기상청 날씨 정보를 알려달라’고 물었을 땐 “함께 기상청에 가볼까요?”라는 동문서답이 나왔지만, ‘현재 날씨를 알려달라’고 하니 “온도는 8도이고 바람은 강하고 비 소식은 없다”는 답변이 바로 나왔다. 노인 일자리를 추천해달라거나 당뇨 관리법을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정보성 질문에는 “함께 인터넷을 검색해보자”는 식의 두루뭉술한 답변만 나왔다. 김지희 대표는 “민감한 주제에 제한을 걸어둔 것도 있고 비용 문제로 답변이 제한적인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용자의 연령대나 디지털 활용 수준 등에 따라 만족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어 보였다. ![]() 때때로 효돌과의 대화엔 인내심이 필요했다. 효돌의 볼에 녹색불이 켜지면 질문을 할 수 있고 빨간불이 켜지면 효돌의 답변 차례다. 엉뚱한 답변이 나오면 다시 질문을 하고 싶은데 지금은 효돌의 말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불편함은 기자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오는 9월 출시되는 2.5세대는 효돌이 답변하는 중간에 말을 끊을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다고 한다. 돌봄로봇에 대한 기대와 우려 돌봄로봇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돌봄인력의 부담을 경감한다는 점에서 나라 안팎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로봇은 센서로 정보를 감지하고 지능과 제어를 통해 판단하며, 스스로 움직이는 3가지 기술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미국 ‘피겨에이아이(AI)’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먹을 것 좀 달라’는 사람에게 사과를 집어 건네고 장을 봐 온 식료품을 냉장고와 선반 위에 둘 것으로 분류해 정리하는 정교한 기술까지 선보였다. 이런 기능을 돌봄에 적극 활용하면, 궁극적으로 돌봄의 질을 높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다. ![]() 정부는 2019년부터 돌봄로봇에 대한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R&D)에 나섰다. 이승과 배설, 식사, 목욕 등을 보조하고 욕창 예방과 모니터링, 이동, 커뮤니케이션 등을 수행하는 로봇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술개발 단계에 있거나 효과성을 확인하기 위한 실증사업을 벌이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산업 현장보다 로봇이 활용되는 속도가 더딘 이유는 뭘까. 한 예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휠체어나 침대, 변기 등으로 옮기는 이승은 요양보호사 등이 물리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업무다. 경희대 에이지테크연구소의 실증연구(2024)를 보면, 돌봄인력이 이승보조 로봇을 이용하면 근육을 63% 더 적게 사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실제 돌봄 현장에 적용되려면 고려할 요소가 많다. 돌봄을 받는 사람과 제공하는 사람 모두가 안전하고 수월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율리 이화여대 철학연구소 연구원(생명윤리·사생학)은 “돌봄은 사람의 신체와 감정을 보듬는 것인데 이런 일은 정형화되기가 매우 어렵다”며 “환자를 옮길 때도 통증 부위와 체격이 각기 달라서 세밀한 부분까지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김영선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는 “기술개발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곤란하고 사용자 관점에서 수용성을 높일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첨단 기술력만이 관건은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개발된 물개 모양의 치료로봇 ‘파로’는 기능은 단순하지만 큰 인기를 끌었다. 쓰다듬으면 실제 동물과 비슷한 촉감을 느낄 수 있어 정서적 지지와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이유였다. 이와 관련해,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습은 소셜로봇의 진화 여부를 결정하는 핵심 기술”이라며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독거노인의 정서 관련 데이터가 우선적으로 수집되고 이를 분석해 적절한 대응 코드를 마련하는 일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황보연의 초고령사회의 질문들은? 지난 연말 우리는 65살 이상 노인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섰습니다. 한때 폭발적 인구 증가가 걱정거리였던 나라가 지금은 빠르게, 그것도 전속력으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인구 국가비상사태’의 본질은 인구 감소보다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동에 있습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초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사회에 던져진 질문을 격주로 하나씩 톺아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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