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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선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노인학과 교수] 노인과 국가에 힘을 싣는 기술, 에이지테크

Vol.250 (2023년 9월호)
‘노년에 관하여’. 고대 로마의 작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기원전 44년에 저술한 책 제목이다. 카이사르의 독재에 반대하다 정계에서 물러난 그는 한때 자신이 쓸모없는 노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에 대한 재성찰을 통해 오히려 노년이 인생의 절정이 될 수 있음을 설파했다. 노화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발걸음으로 볼 수 있지만 꽃이 진 후 채워지는 과실처럼 가장 달콤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분명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다. 사람이 오래 사는 건 문제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쁜 일이다. 중요한 건 어떤 삶의 질을 유지하며 사는지다. 이에 ‘에이지테크(AgeTech)’를 주창한 김영선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는 “에이지테크는 우리나라 발전에 새로운 성장 엔진”이라고 강조한다. 2023년 8월 8일 경기도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서 김영선 교수를 만나 에이지테크의 미래에 대해 들어 보았다.
김영선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노인학과 교수는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경희대 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 연구소장과 보건의료기술정책심의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국내 에이지테크 산업 발전을 위해 산학 협력 생태계 구축에 힘쓰고 있는 에이지테크 분야 최고 권위자다. 


- 노년학이라고 하면 조금 생소한데요, 먼저 어떤 학문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노년학은 노인과 노년기에 대한 연구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노년 인구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목표로 질병 예방, 치료, 사회적 지원, 문화적 활동, 직업 교육 등 다양한 측면에서 건강하고 안락한 삶을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종합 학문으로 발전했어요. 세계적으로 고령화 사회, 고령 사회 국가가 늘고 그에 따른 문제를 동반하며 노년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국내에서는 저희 경희대가 최초로 노년학 석박사 과정을 시작했는데 학문이라고 해서 대학 내에서만 연구, 교육하지는 않아요. 기업과 산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자 학교와 기업 간의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약 10년 정도 생태계를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 육성을 목적으로 한 국가 프로젝트인 ‘브레인코리아(BK21) 에이지테크 교육연구단’으로  2020년부터 선정돼 참여 중이고요.

경희대 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에서는 노화와 관련한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개발과 그 효과성에 대한 실증 연구를 발전시켜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국가의 정책 서비스 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많은 기업에서 고령 소비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더라고요. 이런 기업들에게 고령 소비자에 대한 정보, 지식을 안내하고 관련된 기술, 서비스에 대해서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 기업의 필요를 연결해서 기업 간 MOU를 돕거나 유통처를 연결해 주기도 합니다. 현재 다양한 산업 분야에 걸쳐 47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 기업들과 매년 세미나, 포럼 등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있어요.


- 에이지테크의 개념에 대해서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에이지테크는 우리말로 고령 친화 기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기존의 단순한 돌봄 위주의 기술뿐 아니라 고령자를 위한 모든 기술, 제품, 서비스로 확장된 개념입니다. 또한 만 65세가 넘는 노인뿐 아니라 미래의 노인 세대, 즉 베이비 붐 세대, 중년층 등 신체적으로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이들이 경험하는 문제에 대응하는 굉장히 포괄적인 분야예요.
세계 시장에서 에이지테크에 대해 논의한 지는 20년 정도 되었습니다. 다른 기술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데 그렇기에 우리가 새롭게 발전시켜 갈 수 있는 영역이에요. 우리나라가 여러 분야에서 패스트 폴로어(Fast Follower)로 잘 따라가고 있는데 에이지테크만큼은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에이지테크는 구체적으로 어떤 산업들로 구성되어 있나요.
BK21 에이지테크 사업단에서는 에이지테크를 크게 3대 핵심 분야와 8개의 유망 기술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핵심 분야는 ‘고령자의 자립 생활 기술’입니다. 여기에는 6개 유망 기술이 포함됩니다. ▲자동 점등·점멸, 가스 누출 신고 등을 대신해 주는 스마트홈 ▲고령 친화 식품 등 시니어 영양 ▲당뇨·혈압 등과 같은 고령층에게 위험한 질병을 측정할 수 있는 디지털 헬스케어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거나 재활을 돕는 운동·재활 ▲직접 운전하는 경우 자율 주행이나 보행 보조 목적의 머슬 슈트 등 이동 ▲대화를 하며 심리적 안정을 주는 커뮤니케이션 로봇 같은 정서 지원 감성 기술입니다. 

두 번째 핵심 분야는 ‘돌봄 인력 부담 경감’입니다. 이와 관련 유망 기술 분야인 돌봄 로봇은 돌봄 인력의 신체적인 부담을 줄이고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는 기술이에요. 대표적인 사례가 사람 대신 환자나 노인을 침대, 휠체어 등으로 들어올리는 이승(移乘) 돌봄 로봇입니다. 
또한 플랫폼 분야는 돌봄 대상의 데이터를 디지털화해 노동 부담을 줄여 주고 노인의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확인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마지막 핵심 분야는 ‘디지털 격차 해소’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마스크 파는 약국을 찾는다던가 어디서 확진자가 발생했는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지만 노인들은 그렇지 못했어요. 이처럼 좋은 기술, 서비스가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디지털 격차를 해소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고령자 기술(제품)-서비스 연계 분야는 더욱 각광받을 거예요. 최근 많은 기업들이 디지털 리터러시라고 표현하며 디지털이 사용자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 말씀하신 필요성과 시급성에 비해 에이지테크 분야는 발전이 좀 늦는데 이유가 뭘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 기대 수명이 갑작스레 늘었습니다. 2021년 세계은행(WB)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대 수명은 83.43세예요. 전체 국가 중 5위로 미국의 기대 수명보다도 약 6년 정도 높습니다. 하지만 길어진 기대 수명에 대한 대처를 미처 하지 못했어요.
두 번째 이유는 내수 시장이 작았습니다. 아직 베이비 붐 세대도 젊고 노인 소비자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다 보니 관련 제품은 독일, 일본에서 수입해 유통하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기술력도 갖추지 못했죠. 
그렇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릅니다. 2025년이 되면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6%에 달하게 됩니다. 내수 시장이 형성되는 거예요. 이런 측면에서 최근 기업의 관심도나 투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어 앞으로 시장과 산업이 급격히 발전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 특히 지금의 베이비 붐 세대가 노인 인구로 편입되면 시장이 더욱 커지겠어요.
그렇죠. 현재 사회 활동을 활발히 하는 베이비 붐 세대인 1955~1963년생이 전체 인구의 약 14.5%에 달하는 714만 명인데 이들은 노년층이 되어도 주요 소비자로 활약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처럼 전망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소득의 변화입니다. 우리나라 실질 은퇴 연령 평균이 72.3세인데 정년퇴직하는 공식 은퇴 연령이 62세이니 10년 이상의 격차가 있죠. 
실질 은퇴가 늦는 것은 노인 빈곤율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년퇴직 후 전문가나 고위 임원직 관리자로 일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관련 통계를 보면 그 비율이 2020년 10.8%로 2008년 대비 2배 이상 늘었어요. 이는 정년퇴직 후에도 고소득을 유지하는 노년층이 늘어날 것을 뜻합니다.

두 번째는 지출의 변화입니다. 통계청의 가계 금융 복지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년층의 식료품, 통신비, 의료비, 주거비 지출이 매년 늘고 있어요. 즉 고령 소비자들도 예전과 달리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유산을 남기는 것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습니다. 주택 연금만 해도 도입 초기 이용률이 저조했는데 2023년 상반기 주택 연금 신규 가입은 1년 전보다 17% 증가해 제도 도입 후 최대치를 보이고 있어요. 노년층이 소유한 부동산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보다 의료비, 실버타운 입주 등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죠. 


- 에이지테크 산업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경희대 디지털뉴에이징연구소가 2020년 발표한 전망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에이지테크, 즉 고령 친화 산업 시장 규모는 2020년 72조 원, 2030년 168조 원으로 성장이 예상됩니다. 시장 소비자를 45세 이상까지 확대하면 2030년 239조 원까지 성장할 전망이고요. 시장 규모 자체는 아직 작다고 볼 수 있지만 연평균 증가율이 13%에 준하는 굉장히 높은 성장세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해외 시장은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통계 결과 2030년에는 미국이 가장 큰 시장으로 3조 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은 고령화율이 17%로 아직 초고령 사회는 아니지만 베이비 붐 세대가 나이 들면서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아시아 시장도 상당히 큽니다. 일본은 이미 노년층이 30%에 가까운 초고령 사회이죠. 중국은 2033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고 60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25년까지 3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 최근 혼자 사는 노인이 늘고 있는데요,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인 가구 중 65세 이상이 전체 노인 인구 중 20.8%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그게 에이지테크가 발전해야 하는 가장 큰 목적입니다. 혼자서도 어떻게든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안전하게 응급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게 에이지테크의 첫 번째 지향점이에요. 두 번째는 노년층을 돌보는 사람들의 신체적, 심리적 부담을 줄여 주는 것이고요.
실상 노인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노인 단독 가구는 78.2%, 자녀 동거 가구는 20.1%로 자녀와의 동거 희망 비율도 점차 줄어들어 향후 노인 단독 가구의 증가 추세는 지속될 전망입니다. 그래서 혼자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잔존 능력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고요.

실버 이코노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자립적인 삶(Independent Living)’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안전하게 삶의 질을 유지하는 환경이 되어야 하고 특히 노인을 위한 돌봄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고 이것이 에이지테크가 하는 일입니다.


- 마지막으로 교수님께서는 노화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기업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노년기는 비교적 건강하면서 돈과 시간도 있고 전문성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생산성 높은 시기인 제3의 인생(Third age), 젊은 고령자인 욜드(Young Old : Yold) 등 다양하게 표현됩니다. 고령 소비자는 소비자 계층의 76%로 빠르게 증가하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합니다. 
초고령 사회가 된다는 것은 내수 시장이 형성된다는 것으로 2025년 1000만 명 이상, 2030년 1300만 명 이상이 되어 고령소비자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새로운 활력이 필요한 변곡점에서 에이지테크와 고령 친화 산업은 지속가능경영(ESG)을 넘어서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선점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드립니다. 아울러 대학에서는 에이지테크 개발과 서비스 제공을 위한 융합형·문제 해결형 전문 인력 양성이 중요하므로 대학·기업 간 파트너십이 중요한 솔루션이 될 것입니다. 


 
※BOX. 국가 차원에서 에이지테크에 대한 적극적 지원 필요
김영선 경희대 교수는 2007년 제정된 ‘고령친화산업진흥법’은 상징적인 법으로 전면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고령화율이 7%밖에 되지 않던 시점에 만들어진 이 법은 고령 친화 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내용만 제시하고 국가의 역할을 명시하지 않아 앞으로 도래할 초고령 사회와는 맞지 않는 다는 의견이다. 
현재 정부에서 에이지테크와 관련된 기술 개발 및 R&D 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특히 응급 안전 서비스 등 이미 상용화된 기술의 활용을 늘리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예산 투자가 충분하지 않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반면 2005년 고령화율이 20%가 된 일본과 2008년 20%가 된 독일은 국가 차원에서 에이지테크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돌봄 로봇 등 다양한 종류의 로봇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나 R&D 예산과 기간 문제로 인해 상용화에 어려움이 있다. 이에 김영선 교수는 “우리나라도 2025년에 고령화율 20%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어떻게 무엇을 준비할 것이냐는 중요한 이슈”라며 “전면적인 국가 투자를 추진해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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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이창호 편집장  / 에디터 이지완 기자  / 사진 문성균